[시사저널] "국과수가 독점하고, 제조사는 숨는다…급발진 운전자만 속 타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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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11-07본문
“국과수가 독점하고, 제조사는 숨는다…급발진 운전자만 속 타는 현실”
- 기자명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11.07 09:49
[인터뷰] ‘강릉 티볼리’ 손자 사망 사고 가족 소송대리인 하종선 변호사
운전자, 약 2년 만에 ‘무혐의’…“급발진 결함 입증, 제조사가 책임져야”
“AI시대에 소프트웨어 결함 분석은 필수…국과수, 인력 없으면 의뢰라도”
“급발진 인정 사례 0건.”(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과수, 중립적이고 열린 자세로 분석 범위를 넓혀서 수사해야…”(하종선 변호사)
최근 자동차 사고 운전자마다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과학 수사의 중요성이 커졌다.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국과수가 급발진 사고 분석의 핵심 ‘키’를 쥐고 있지만, 국과수는 여태껏 단 한 차례도 급발진을 인정한 적 없다. 이에 사고 운전자들의 속은 타들어가는 모습이다. ‘숨은 가능성’을 고려해 수사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현재로선 운전자 스스로 그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강릉 티볼리’ 급발진 주장 사고로 이도현군(당시 12세)을 잃은 유족은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암흑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사고 차량 운전자인 도현군 할머니(71)는 사고 발생 약 2년 만에 ‘무혐의’ 결론을 받았다. 경찰이 재수사한 결과, ‘차량 결함이 없고,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 결론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경찰이 국과수 감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건 이례적이다. 지난 2022년 12월, 사고 당시 차량인 티볼리에어는 강원 강릉시 한 도로에서 굉음과 연기를 내뿜으며 시속 100km 이상으로 내달렸다. 차량은 신호 대기 중이던 모닝 차량과 추돌한 뒤 600m쯤 더 질주하다가 왕복 6차선 도로를 날아 지하통로로 추락했다.
앞서 국과수 측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급발진 발생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다”, “전 세계적으로 급발진 검증 사례는 없다”, “주 원인은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라고 강조했다(「[단독] 국과수, ‘시청역 사고’에 인력 3배 투입…‘그날의 기록들’ 공개」 기사 참조).
하지만 ‘강릉 티볼리’ 사건이 무혐의 결론이 나면서 이 같은 주장에도 의문점이 생긴다. 기자는 해당 사건의 불송치 결론이 난 직후 11월4일 도현군 가족의 소송대리를 맡아온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하 변호사는 “급발진 인정 사례는 없다고 단정 짓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사건을 분석해야 한다”며 국과수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음은 하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강릉 티볼리’ 사건부터 짚어보자. 경찰이 국과수 감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불송치한 경우는 이례적이다. 현재 도현군 가족들의 심정이 궁금하다.
“도현이 가족이 오래 기다려온 결과다. 국과수가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급발진 주장 사고 분석은 사실상 국가기관인 국과수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견제하거나 비판하는 주체도 거의 없다. 결국 운전자들은 국과수와 싸워야 하고, 자동차 제조사는 국과수 뒤에 숨어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대다수 운전자는 국과수가 ‘페달 오조작이 원인’이라고 단정하면 (반론을) 포기해버린다. 결국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거나, 막대한 돈이 들어도 급발진을 증명해야겠다는 이들만이 겨우 (입증을 시도)해보는 게 현실이다.”
하 변호사와 도현군 가족 측이 진행한 재연시험의 감정 결과는 국과수의 결과와 어떤 차이가 있었나.
“국과수 분석의 한계가 드러났다. 국과수는 ‘가속페달 변위량 100%(풀 액셀)·브레이크 페달 OFF’로 기록된 사고기록장치(EDR)를 근거로 페달 오조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법원 지정 감정인을 통해 저희가 실시한 실도로주행 시험의 감정 결과는 달랐다. 차량 EDR에 기록된 사고 5초 전 속도인 시속 110km에서 풀 액셀을 밟으면, 5초 후 속도는 EDR에 기록된 시속 116km보다 더 높은 값(시속 136.5km)이 나온다. 최대 속도에 도달하는 데까지도 약 6초가 덜 걸렸다. 이 차이가 발생한 건 사고 당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다. 또한, 첫 급가속이 일어나면서 모닝 차량과 추돌했을 때의 속도·RPM도 국과수 분석과 전혀 달랐다. 국과수는 또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D→N→D로 조작했다’고 했지만, 음향분석 감정 결과에 따르면 그런 조작도 없었다. 국과수도 충분히 이런 분석을 할 수 있지만 안 했다.”
‘국과수의 한계’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지적하는 건가.
“소프트웨어 결함 분석을 하지 않아 ‘반쪽’짜리 분석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가 모두 정상이라는 전제 하에 하드웨어·기계적 실험만 하고, EDR을 100% 신뢰할 뿐이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는 단순 기계가 아닌 고도의 AI가 적용된 소프트웨어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버그는 없었는지, 로직 설정에서 실수가 발생하진 않았는지 등 소프트웨어 오류 여부를 분석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인력 부족 문제라면 타 기관에 의뢰하는 시도라도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결함’이라고 한다면 어떤 게 있나.
“실제로 2013년 미국에서 진행된 도요타의 ‘북아웃 소송’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소프트웨어 전문가 마이클 바(Michael Barr)는 실제로 엔진 스로틀 컨트롤 시스템(ETCS) 전자제어장치(ECU) 내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자동차 속도가 급상승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이 오류를 막을 안전장치도 작동하지 않아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계속 밟으면 급발진이 지속되고, 발을 완전히 떼야만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이클 바는 EDR 소스코드를 분석해 급발진 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어도 EDR에는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거꾸로 기록된다는 점도 밝혀냈다. 당시 도요타 측 전문가가 실시한 시험에서도 이런 오류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티볼리 제조사인 KG모빌리티(KGM·옛 싸용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증인으로 채택한 박정철 변호사는 어떤 증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나.
“내년 2월쯤 1심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강릉 티볼리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로 사고 현장에서 실도로주행 시험을 한 사건이다. 또 자동긴급제동장치(AEB) 작동·EDR 신뢰성·가속 페달 변위랑 감정 등 필요한 기술적 감정을 모두 실시한 만큼 판결을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특히 박정철 변호사는 증인신문에 적격인 분이다. 박 변호사는 사고 차량인 티볼리에 장착된 ECU를 제조한 독일 콘티넨탈사 한국 법인에서 5년 동안 엔지니어로 일했다. 증인석에서 ECU에 소프트웨어 결함이 왜 발생하는지, EDR 기록만으로 급발진 여부를 왜 판단하기 어려운지 등을 증언해줄 것이다.”
국내에서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있는가.
“국과수 자체 통계만 보면 0건이겠지만, 판례로 보면 여러 사례가 나온다. 지난 6월4일에는 인천지법에서 택시 급발진 사고에 대해 ‘EDR상 브레이크 페달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기록된 것은 운전자가 제동페달을 밟지 않은 경우 뿐만 아니라, 제동페달을 밟았지만 기계적 결함 등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국과수는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예방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국과수가 감정한 급발진 주장 사고 운전자의 평균 연령은 60대 이상 고령 운전자였다. 이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국과수는) ‘고령 운전자일수록 내가 밝고 있는 게 브레이크라고 믿는 확증 편향적 사고를 하기 쉽다’고 했는데, 과연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일까. 물론 고령 운전자일수록 신경학적 건강 저하는 있을 수 있지만, 10~30초 동안 계속 페달을 착각해서 밟는다는 주장의 근거가 궁금하다. 국과수가 고령일수록 확증편향을 갖기 쉽다는 인체공학적 분석 결과를 제시하거나, 혹은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다.”
사고 운전자 대부분 잘못 밟은 페달을 끝까지 교정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가 나온다. 실제로 ‘페달 오조작 발생률’에 대해 연구한 자료가 있나.
“물론이다. 다만 대부분 잘못을 금방 알아차리고 교정했다고 밝힌다. 대표적으로 2020년 일본에서 40명의 젊은 성인(평균 21.9세)과 40명의 노인(평균 71.35세)이 페달 조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비교해봤다. 두 집단이 액셀을 잘못 밟았다가 발을 떼고, 다시 브레이크를 밟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큰 차이가 없었다. 노인 집단이 0.858초 더 걸렸다. 버지니아 공대에서도 페달 오조작 실험을 했는데,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해 밟는 확률이 0.00028%도 안 됐고, 잘못한 경우에도 금방 교정했다고 밝혔다. 한양대학교에서도 288명을 대상으로 가상급발진 실험을 했는데, 액셀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은 경우는 없었다. 단 2명이 두 페달을 동시에 밟았을 뿐이었다.”
급발진 주장 사고가 늘어나면서 ‘도현이법’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현행 제조물책임법 규정은 제품 결함에 대한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지만, 도현이법은 이를 제조자가 입증하도록 전환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AI 시대에 소비자 혼자 소프트웨어 결함을 입증하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이건 도현이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소프트웨어에 어떤 알고리즘과 기술이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결함 입증 책임을 소비자한테 전가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현실 아닌가.”